러시아 이주노동자: "전쟁을 피해 왔지만, 여기가 더 전쟁터 같아요"


본문
“내 이름은 이주민” – 음성에 뿌리내린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
“내부 온도가 45도에 이르는 세탁 공장에서 20시간을 일했습니다. 겨우 4시간 정도 자고 있는데 다시 일어나라고 깨웠어요. 전쟁을 피해 왔지만, 여기가 더 전쟁터 같아요. 이제는 안정된 직장을 찾고 싶어요.”
이는 충북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최근 발간한 노동 인권 책 ‘내 이름은 이주민’ 속 한 러시아 노동자의 절절한 고백이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뒤, 끝없는 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주 노동자의 삶을 조명한 이 책에는 우즈베키스탄, 몽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 러시아, 네팔 등 8개국에서 온 22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두 충북 음성에 거주하는 이들로, 이들의 목소리는 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들이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며 기록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음성, 그러나 녹록지 않은 이주민의 현실
충북 음성군은 인구 약 10만 4,000명 중 13.3%가 외국인일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이들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주민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 불안정한 신분, 사회적 편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책에는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혀 숨어 살아야 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몽골 출신 자르갈(가명)은 “언제 단속에 걸려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산다”며, 딸이 한국에 유학을 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털어놓았다.
비슷한 처지의 베트남 출신 미나(가명)와 말레이시아 출신 지호(가명)는 “비자 걱정 없이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주민 지원 활동을 하는 재중교포 오선영 씨는 이주 여성들이 겪는 편견과 상처를 언급하며 “돈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국적을 떠나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우(오른쪽 노트북 앞 남성) 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가 필리핀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 등과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 담긴 바람, 그리고 메시지
음성노동인권센터는 이 책을 통해 이주민들이 단순히 노동력 제공자로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박성우 활동가는 “*‘내 이름은 이주민’*은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우리 이웃으로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바람을 담은 책”이라며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이 이주민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센터는 2022년 ‘안녕, 노동인권’, 지난해 *‘충북 음성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에 이어 이번 책을 펴냈으며, 오는 30일 음성군 생극면 도토리숲 카페에서 북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내 이름은 이주민’*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공감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작은 시작이다. 이주민의 삶과 그 속에 담긴 꿈, 희망, 그리고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출처 : https://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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